입과 턱과 손의 방문객들
Visitors to the mouth, chin and hands
7th Solo Exhibition
유머감각, 서울
2024
Seoul, Republic of Korea, Humor Garm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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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부터
7th Solo Exhibition
유머감각, 서울
2024
Seoul, Republic of Korea, Humor Garmgot

입으로부터
태국 촌부리의 방센 비치에 간 적이 있다. 해변 모래사장을 가득 메운 야자수가 핑크빛 하늘과 쪽빛 바다에 장막을 쳤다. 그마저도 장관인 해변에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야자수 사이로 거대한 나무 하나가 보였다. 10미터가 족히 넘는 아름드리나무의 빼곡한 이파리는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이파리 소리 사이에 협연하듯 울어대는 생명체가 있었다. 분명 무리인데 그 개체 수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허공 사이로 울림을 만들어내는 소리에 호기심이 극에 달했다. 안경까지 도수가 있는 것으로 바꿔 끼고 소리를 쫓아 나무 가까이로 걸었다. 걸으며 아무리 카메라의 줌을 당겨보아도 평범한 나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 혼자 잘못 듣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때쯤 해변도로를 달리던 차 한 대가 노점 수레를 보고 놀라 경적을 울렸다. 그 순간 셀 수도 없이 많은 새가 날개짓을 하며 나무에서 날아올랐다. 민소매의 팔과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고개가 절로 추켜 올려졌다. 허공에는 점으로 흩어진 무지개가 날아다니는 듯했다. 그러다 서찬석의 그림이 생각났다. ‘호금조.’
The Noisy Gouldian Finch
3 pieces each 91 x 116.8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호금조 군집에 소름이 돋았다. 울음소리도, 나무 안에서 완벽하게 은신했던 방법도, 소스라치게 놀라 휘적거리는 날개들도, 군집의 생명력은 장관이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새 군락의 생존 방법을 수리산 자락에서 본 적이 있다. 셀 수 있을 정도의 이파리만 남은 마른 나뭇가지에 빼곡히 앉은 물까치 떼였다. 여기산에서 봤던 백로 떼는 소나무 높은 가지에 저마다 앉아있었는데 하얀 배설물과 백로의 몸이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새 군락은 나름대로 저마다의 사는 방법과 공존하는 방법이 있는 듯했다. ‘입과 손과 턱의 방문객들’은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한다. 일부만 보고 말로 서로가 원하는 것이나 해야 하는 것을 전달한다. 피곤함을 방지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커뮤니케이션만을 허용하는 관계이지만 사실 이런 관계도 절대적 쉼을 위한 방법은 아니다.
몸과 마음의 쉼터 2024 매달린 시선들 2024
Just Rest Suspended Gazes 100cm x 70cm.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100cm x 70cm. Ink on paper
고단함에 지친 이가 공원 벤치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바람 소리만 들리던 고요함도 잠시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감나무 사이를 휘저으며 먹이 실랑이를 벌이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신경을 자꾸만 건드렸다. ‘먹이가 모자란가?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하고 가까이 가보니 나무에 감이 한 가득인 거다. 쉼을 빼앗아가 버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에릭 로메르의 영화 ‘수집가’가 떠올랐다. 인간의 도덕적 고민 그러니까 마음의 시끄러움을 섬세하게 담고 있는 이 영화의 전반에는 새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감이 없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살아있음 자체가 소음이라는 듯 말이다. 서찬석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집을 나서서 친근한 바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피로를 푼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잡음으로부터 벗어나 노동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싶지만 결국 인간들 사이로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 생을 조용한 장면들로 그렸다.
큰 고양이 그림 벽지가 있는 방 2024
A room with a large cat picture wallpaper
2 pieces, each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서찬석은 그림 위에 새기던 일종의 잡음들을 다 소거해 버렸다.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어 그림을 그리고 흘러나오는 대사를 글자로 적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들을 내려놓고 판화지의 티크함과 각기 다른 재료에서 오는 손맛을 느끼며 그림을 그렸다. 어떤 걸 그려야 이런 의도가 전해지겠다 생각하기보다 그냥 그의 상태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친” 것이다. 그가 “그치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이와 같은 방식을 택한 데에 기쁨을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은 ‘쉼’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다양한 매체를 다루어야 하고, 동시대 시각예술가로서 어떤 행위를 해야만 하고, “아, 다 시끄럽고 그냥 나는 그림을 그려 볼 거야.”라는 아주 담백한 선택이 내용이나 형식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로 발현됐다. 그가 작업을 할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조언 격의 말도 소거되었고, 그런 흩어지는 소음이 들릴 때마다 흔들리던 자신도 무게 중심을 잡았을 테니 말이다.
염소와 호금조가 있는 정물 2024 F30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a Goat and a Gouldian Finch Toy Still Life with an Air Staple Gun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들이지만 가지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배울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해변가 시설물에 앉아있는 갈매기, 가로등에 앉은 비둘기, 전깃줄 위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보자. 모두 서로의 자리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방해가 될 때는 갈등이 그대로 표면에 드러난다. 날갯짓을 더 강하게 해서 좇아내든지. 아니면 피해 버리는 거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사람으로 태어나버린 조건을 감당할 권한은 나에게 있다. 괴로움은 나로부터 오고 인간의 모든 것은 입으로부터 오는 듯하다. 그가 ‘입과 턱과 손의 방문객들’이라고 전시 표제를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아니겠나.
Still Life with a Goat and a Gouldian Finch Toy Still Life with an Air Staple Gun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들이지만 가지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배울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해변가 시설물에 앉아있는 갈매기, 가로등에 앉은 비둘기, 전깃줄 위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보자. 모두 서로의 자리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방해가 될 때는 갈등이 그대로 표면에 드러난다. 날갯짓을 더 강하게 해서 좇아내든지. 아니면 피해 버리는 거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사람으로 태어나버린 조건을 감당할 권한은 나에게 있다. 괴로움은 나로부터 오고 인간의 모든 것은 입으로부터 오는 듯하다. 그가 ‘입과 턱과 손의 방문객들’이라고 전시 표제를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아니겠나.
잘 숨기지 못한 덫.
2024. 100*70cm.
종이에 먹, 아크릴, 페인트 그림자
펼치기.
2024. 100*70cm.
종이에 먹, 아크릴, 페인트
The Unconcealed Trap Unfolding Shadow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100cm x 70cm.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역시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네.
늘 항상한 것도 아니며, 역시 끊어지는 것도 아니라네.
한결같은 것도 아니며, 역시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네.
오는 것도 아니며, 역시 가는 것도 아니라네.
이것은 인연법으로라야 능히 설명이 되나니
모든 희론을 잘 없앤다네.
도정의 ‘연기경’ 해설 중에서...
이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