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과 귀신
The Alien and the Ghost
8th Solo Exhibition
오픈스페이스배, 부산
2025
Bu-San, Republic of Korea, openspace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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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의 장면 : 공간에 들러붙은 ‘귀신’,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이방인
8th Solo Exhibition
오픈스페이스배, 부산
2025
Bu-San, Republic of Korea, openspace bae
평행의 장면 : 공간에 들러붙은 ‘귀신’,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이방인
서찬석의 애니메이션 영상작업 〈데자뷰〉(2025)는 차 안의 드라이브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두운 도로 위 헤드라이트가 길을 비추고 그 빛에 포착된 동물의 형체가 스친다. 차는 불이 나고 기름이 튀고 장면은 말도 안 되게 뒤섞인다. 화면은 현실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전개는 꿈의 구조를 닮았다.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이것이 처음인지, 이미 본 적이 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 직전 이미 본 적 있는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는 순간의 기시감. 작가가 말하듯,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모든 이미지는 생생하지만 또렷하지 않다. 〈데자뷰〉는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기억의 재현이 아닌 시선을 되돌리는 장치다. 보는 이의 눈을 화면의 시작점으로 밀어 넣고 그 되돌림 속에서 ‘본다’는 행위 자체를 다시 시험한다.
Dejavu_2025_34s 4m_digital animation
나는 작가가 이야기해준 한 예를 기억한다. 맥주잔과 맥주잔이 놓여 있을 때 그 두 잔이 닿는 순간 혹은 나란히 놓인 상태에서 무수한 이야기가 생긴다고 했다. 작가는 그 두 잔을 시간의 순서로 배열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되감으며 서로 만나지 않는 이야기들의 평행한 장면을 만든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는 1막이 2막으로 넘어가다가도 다시 1막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때 미지의 이미지가 불쑥 끼어들고, 서로 다른 시간이 한 화면에 겹친다. 이 되돌림은 때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사이에서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장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 반향이 서찬석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전시는 오픈스페이스 배와 맞은편의 안녕, 예술가 그리고 별관 이렇게 세 공간을 모두 사용한다. 각 공간에는 번호가 붙어 있으나 반드시 그 순서로 관람할 필요는 없다. 이 배열은 동선이 아닌 이방인의 시선이 내부로 스며드는 하나의 구조다. 전시는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서로 다른 장면이 교차하고 각 공간은 다시 이어지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제목으로 ‘이방인’과 ‘귀신’을 나란히 두었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자리를 바라본다. ‘이방인’은 발이 묶이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하는 존재다. 반면 그가 지나온 지역과 각 공간의 익명한 방문자들 그리고 남겨진 자취는 모두 ‘귀신’으로 남는다.

-The act of seeing_2025_ Variable size _Aluminum blinds, LED white lighting


Around_2025_18s 7m _ 226 scenes from the research photos

The Alien’s GPS 01_2025_1091*788_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The Alien’s GPS 02_2025_1091*788_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서찬석은 ‘리서치’라는 이름으로 GPS를 켜고 걸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조사라기보다 정처 없이 걷는 자신을 ‘이방인’이자 ‘귀신’으로 바꾸는 일에 가깝다. 작가는 구도심 동광동 인쇄골목에서 걸음을 시작한다. 가방을 메고 골목 사이를 통과하며 오랜 시간 부산을 오가며 본 풍경을 따라간다. 지침을 따르지 않고 기억과 직관에 의지해 걷는다. 작가는 도시의 수평이 맞지 않는 곳들을 바라본다. 기울어진 바닥 위에는 기울어진 건물들이 서 있고 그 안에는 여전히 균형을 잡으며 존재한다. 평평하게 다듬어진 길과 높아진 건물들 사이에서도 이 도시는 쉽게 깎이지 않는다. 부산의 오르막길은 사람의 무릎을 갉아먹을 만큼 가파르고 그 경사는 세월의 형태를 남긴다.
작가는 오픈스페이스 배의 윈도우 벽면에 검은색 먹으로 〈hope〉(2025)를 그렸다. 이 드로잉은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원형 계단이다. 작품의 제목인 ‘hope’는 위로 나아감의 상징이 아니다. 나아가려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멈춰 있는 상태다.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계단은 무언가를 향해 올라가려 하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그 중간지대에서 희망은 멈추지 않고 반복된다. 이곳에서의 시선은 내부를 투시하지 못한다. 벽면과 유리의 굴절로 생긴 왜곡된 시야는 오히려 더 큰 기대를 품게 만든다.
HOPE_2025_Variable size_Ink on the wall
그리고 그 안에는 부산 중구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Commodore〉(2025)가 있다. 이 건물의 형태는 실제 구조와는 조금 어긋나 있다. 코모도호텔은 일본식 양식을 닮았지만 완전히 그렇지는 않은 혼종적인 건축물이다. 외관만으로는 그 정체를 단정할 수 없기에 오히려 이방인의 시선을 더 오래 붙잡는다. 이방인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반대편에는 또 다른 건물 〈The Culture〉(2025)가 있다. 낮은 층수와 지워진 간판과 익숙한 입구의 형태는 부산의 오래된 건물들을 닮았다.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지 않지만 스쳐 지나가기 좋은 자연스러운 도시의 얼굴이다. 두 건물은 서로를 마주 보며 이 도시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나는 이방인의 욕망을, 다른 하나는 그들이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일상의 표면을 담고 있다.

Commodore_2025_
Variable size_Ink on the wall

The Culture_2025
_Variable size_Ink on the wall
이러한 표면은 〈Empty Room〉(2025)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붉은색 테두리의 칸이 한 생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마치 그 존재의 흔적을 확인하듯 형체를 붙잡는다. 반복 재생되는 이 영상은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생명은 움직이지만 살아 있지는 않다. 그것이 생명일까 아니면 귀신일까. 움직임은 생명을 흉내 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모방은 이미 죽음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Empty Room〉의 ‘텅 빈 방’은 전시의 조건을 드러낸다. 허구가 진실보다 오래 남고 부재가 존재를 대신하는 자리다.
-Empty Room 01,02_2025_Looping video_digital animation
서찬석은 이번 전시에서 드로잉 속 인물과 동물의 흔적을 지워낸다. 작가는 더 이상 이야기를 담거나 사연을 수집하지 않는다. 대신 말과 사건이 사라진 자리에서 형태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한다. 그의 화면 속 오래된 건물들은 과거의 화려함과 현재의 굳건함을 함께 품은 채 그저 ‘서 있는’ 존재로 남는다. 곧지 않은 계단과 기울어진 건물의 모습은 실제 지명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장소처럼 느껴진다.

-Dividing Stairs 01_2025_1091*788 _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Dividing Stairs 02_2025_1091*788 _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그리고 이곳에는 여전히 서로를 지켜보는 눈이 있다. 이들의 소리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들, 그것은 이곳을 떠나지 못한 ‘귀신’이자 다시 돌아온 ‘이방인’이다. 귀신의 시선은 안쪽에 머물고 이방인의 시선은 바깥을 맴돈다. 두 시선은 서로를 향해 교차하며 그 사이에서 공간과 드로잉, 영상은 서사를 쌓지 않고 구조를 드러낸다. 서찬석의 〈이방인과 귀신〉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 사이의 경계를 그린다.


-Ghost Mark 01_2025_788*1091_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Ghost Mark 03_2025_788*1091_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Ghost Mark 02_2025_788*1091_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Ghost Mark 04_2025_788*1091_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Ghost Mark 04_2025_788*1091_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The seen_2025_가변크기_Aluminum blinds, ping pong ball, lacquer spray
건물들은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채 지금은 허기진 상태로 존재한다. 한때 중심이었던 장소는 이제 비어 있는 공간이 되어, 다른 시선이 머무는 자리가 된다. ‘귀신의 자리’라 부를 수 있는 이 빈 서사는 공포영화의 예고된 장면처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면이 생겨날 가능성을 위해 비워둔 공간에 가깝다. 드로잉으로 만들어진 허구는 그 빈자리에서 때로 해프닝이 되어 소문으로 남는다. 그렇게 이 공간은 다시 채워지고,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지며 또 하나의 ‘평행의 장면’을 완성한다.
큐레이터 유경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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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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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중앙동 4가_2025_각 1000*700 2점 1세트_ Acrylic paint, ink, water-based paint on paper
이방인과 귀신 2025
The Alien and the gh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