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NOT) a LOVE SONG
4th solo exhibition
Seoul Indie art hall GONG
Seoul, Korea 2018
인생 2라운드쯤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 치르게 된 네 번째 개인전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잡아 놓고 머리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역시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는 모른다고 선언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그, 다행히도 이제 사랑을 모르겠다는 것을 알 만큼은 사랑을 안다. 그래서 감히 토끼에게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대신 눈도 없고 내장이 헤집어진 '죽은 상태'의 핑크토끼에게 직접 이번 전시를 안내하도록 했다.

어려운 사랑에 대해 고민하던 그가 그린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지혜'롭게 탐구되지 않고 홀대 받았던 에로스다. 말하자면 그가 처름 그린 에로스는 여전히 지혜와 밀당을 벌이는 범속의 에로스. 아마도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 조금 떨어져 비웃으면서도 사랑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꼼짝 못한다.
포기할수는 없다. 작가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사랑은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향해야 한다. 몸을 탐하면서 형체와 피를 만지던 손을 점점 내장으로 침잠하게 한다. 남, 녀, 가죽, 심장, 털, 혀, 염통, 내장, 물, 눈물, 피가 끈적하고 텁텁한 색들로 엮인 흥건하고 질펀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중력의 내장 속에서 버무려진다. Do 'the black kiss'. 서로의 혀가 닿으면 죽음의 불안과 맞물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죽음을 맛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천사들이 이끄는 사랑의 단계로 올라갈 것임을 예감할 수 있다.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천사들이 여기저기에서 발랄하게 웃고 있기 때문. 천사의 날개를 붙잡고 사다리의 꼭대기에 서면 본성이 사랑인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전시 공간의 '기'와 '승'을 구성하는 그림들 속에 대리석 조각, 투시가 들어간 건축물, 해골, 신비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은 피라미드, 사슴 우로보로스, 해와 달, 거기에 천진한 천사들 하며 연꽃과 잉어들을 어지럽게 널어가며 '감춰둔 너의 마음'을 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전'쯤에 난데없는 검은 피에타로 정점을 찍는다. 작가는 닳고 닳은 도상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모두 갖다 썼다. 그것들이 전시공간에 살아왔던 사람들의 고민으로 축적되고 다듬어진 도상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거친 필치 속에 세속적인 것과 범속적인 것을 두서없이 섞음으로서 에로스와 필로스(먹물1로 그렸으니)와 아가페(예수님이 계시고)가 서로 다르지 않는 것을 붓으로 증명한다. 얼결에 사다리의 마지막 발판을 밟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전시에서 이 단계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물렁하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에서 '사랑'을 지목한 것도 누군가의 잘 다듬어진 문구를 선택한 것일 뿐이니까. 얼결에. 시작은 애인과 자존심에 관한 것이었지만 일이 커졌다.

천상의 사랑을 맛보는 마지막 단계에 간 이, 과연 누굴까. 마지막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다반사다. 모두이자 아무도 아닌 것을 사랑하게 되는 그순간, 그 사다리의 계단 끝을 끝내 올랐다는 것을 아는 순간 다시 미끄러지는 좌절을 겪을 것이 뻔하다. 천사마저도 죽음과 같은 것으로 그려졌으니 말 다 했다. 우리 댑부분은 사랑에 가까이 가기는 커녕 작가가 '적'과 '흑'을 오가듯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통해서 상처 주기와 상처 받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한 건 커다란 무릎으로 우리를 받쳐주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염통도 있고._배우리